석유보다 물이 더 급하다?
높은 유가에 세계경제 곳곳이 시름시름 앓고 있다. 세계화 시대의 그물망처럼 연결된 물류의 이동은 여느 때보다 비싸졌다. 이에, 거의 모든 제품의 가격이 연쇄적으로 상승했다. 유가의 상승 요인은 공급량의 한계와 수요 증가로 보는 것이 올바르다. 그런데 석유와 같은 골칫덩어리가 하나 더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그 골치덩어리가 신체의 무려 70%를 형성하는 물이라면?

포춘(Fortune)지가 발행한 보고서는 21세기에는 물 산업이 석유 산업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세계은행 또한 20세기의 전쟁이 석유전쟁이었다면 21세기 전쟁의 목적은 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인구증가와 개도국의 생활 수준 개선으로 인해 물의 소비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반면에 지구온난화 및 환경오염 등의 악재로 인해 마실 수 잇는 물의 양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

중국 물 시장 잡은 베올리아(Veolia)
중국 인구는 세계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허나,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물은 전체의 7%에 불과하다. 중국 정부는 물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것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어떤 생산체제가 가장 비용을 줄이고 수도요금을 낮출 수 있을까?  중국정부는 그 답을 ‘기업위탁’에서 찾았다. 지난 100여 년간 이미 유럽 내에서 치열한 물 경쟁으로 효율성을 갈고 닦은 베올리아(Veolia)가 중국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을 포착했다. 물 산업계 전세계 1위 기업인 베올리아는 취수 및 정수, 하폐수 처리 회사다. 지난 2002년 베올리아는 상해푸동수도회사의 50% 지분을 시가의 2.6배에 달하는 20억 위안에 매입했다. 베올리아는 이 20억 위안의 투자를 ‘일시적 손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일시적 손실을 감수한 엄청난 투자의 이면에는 역시나 수익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넘쳐나는 시장에는 물에 대한 불변의 니즈가 있다. 더욱이 물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한 기반시설에 대한 니즈 또한 엄청나다. 베올리아는 물을 세일즈의 대상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이러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수 있었다. 물은 더 이상 공공재가 아닌 경제재로서 세계경제의 한 켠을 당당히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전세계적으로 힘을 얻고 있다.

무궁무진한 시장성, 물에 주목하라
물의 중요성에 비해 그 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는 다소 외면당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물 공급에 필요한 각종 공급 하드웨어부터 운영을 담당하는 소프트웨어까지 물산업의 스펙트럼은 사실 대단히 방대하다. 더욱이, 물 정제에 사용되는 필터와 같은 부품과   화학품들의 생산까지 감안한다면 대단히 넒은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상하수도의 민영화가 보편화된 영국이나 칠레에서는 단일사업자가 수자원을 통합관리 하도록 법적으로 규제한다. 때문에 물 산업체로서는 수도관리 전 부분에 걸친 역량의 확보가 필수적인 경우가 있다. 실제로 베올리아는 이 수자원 통합관리 솔루션에 역량을 보다 집중하기 위해 기존에 보유했지만 비교적 물 산업과 연관성이 낮은 제조업 부문을 정리, 매각했다. 후발업체라고 할 수 있는 지이(GE)의 경우도 발 빠른 M&A를 통해 산업용 통합 물 솔루션 포트폴리오 구축에 나섰다. 이에 담수화 설비, 산업용수 공급, 폐수처리 및 재활용 등 전체 물 순환 과정 구축에 필요한 역량을 성공적으로 보유하게 되었다. 더욱이, 기타 부수적인 운영, 설계 그리고 재무적 프로세스까지 모두 단독으로 수행해낼 수 있는 역량마저 보유하고 있다. 동일한 업종에서 각각의 생산 단계를 담당하는 기업끼리 결합하는 수평통합을 통해 질 좋고 싼 물의 공급이 가능하다.

물을 더욱 싸게, 원가를 낮춰라
원가를 내릴 수 있으면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물 산업에서 원가 절감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똑같은 물에 원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의 원가 혹은 공급단가는 결국 물이 어떻게 공급되고 처리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실제로 베올리아는 물 산업에서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관련 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업체들을 차례로 매입해나갔다. 이를 통해 수자원 관리에 필요한 전반적인 기술을 보유할 수 있었다. 또 매입한 각종 기술들의 시너지 효과를 바탕으로 기술혁신을 더욱 가속화했다. 기술혁신이 단순히 재정적 측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기술혁신을 통해 더욱 안전하고 깨끗한 물의 공급이 가능해진다. 결국 기술혁신이 원가절감의 핵심이며, 세계 물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들은 M&A를 통해 원가절감에 필요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기업, 통합솔루션 구축이 과제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담수플랜트 건설부문 세계 1위인 두산중공업의 존재는 한국경제에 있어 축구의 박지성과도 같다. 두산중공업은 담수플랜트 건설에 있어서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회사 중 물 관련 산업에서는 유일하게 두각을 나타내며 국제적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특히 중동시장에서 매우 선전함으로써 두산중공업의 담수플랜트 사업이 매우 수익성 있는 사업임을 입증했다. 다만 계획부터 운영까지 모두 담당하는 베올리아나 GE 등과 같은 통합 솔루션과는 거리가 멀다. 다음은 베올리아가 독일 베를린시와 맺은 위탁계약서다. 이 내용을 예로 살펴보자.

이처럼 베올리아는 수도 산업의 설계, 구축, 운영 등을 통째로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베를린시와의 계약을 통해 연간 11억 유로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한편, 한국기업 중 통합 솔루션 구축을 노리고 있는 회사도 있다. 코오롱의 경우 ‘2015년까지 베올리아나 GE와 같은 세계 10대 물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물이 경제재임을 받아들이고, 수평통합을 목표로 한 M&A를 통해 전문 역량을 증대시킨다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

진정한 블루오션, 세계 물 시장을 노려라
수도산업의 규제가 엄격한 한국의 경우, 해외 시장 공략이 당분간 수익모델발굴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이탈리아 아치에아(ACEA)의 경우 로마시가 지분의 51%를 보유하고 있는 공기업이지만 해외사업 비중도 37%에 달한다. 나아가, 프랑스를 연고로 하는 세계 물 산업의 1, 2위인 베올리아와 온데오(Ondeo)도 프랑스 내 사업 비중은 모두 20% 미만에 불과하다. 2위 업체인 온데오는 지분의 35% 가량이 정부소유이기는 하지만 운영방식은 여느 민간기업과도 같다. 그리고 두 기업의 최근 매출액의 합은 무려 2조 6000억 원에 달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물 산업의 민영화는 아직 9%에 불과하다. 하지만 향후 아시아와 기타 개도국의 산업화가 빠르게 이루어져 안정적인 물 공급망에 대한 니즈는 더욱 커질 것이다. 유럽의 물 기업들은 이미 적극적으로 투자 활동을 하고 있다. 실제로 2015년에는 20여 개의 물 전문기업이 전체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 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세계 물 시장의 규모는 이미 900조원에 달한다.

전 세계를 흔들어 놓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자원 석유. 많은 이들은 석유를 블랙골드(Black Gold)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제 블루골드(Blue Gold), 즉 ‘물의 시대’가 오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차세대 블루오션인 블루골드 시장을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