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아웃소싱기업협회 > 뉴스 > 윤리경영, CEO가 먼저 나서라

1982년 가을 미국 시카고에 살던 야누스 씨가 가슴에 가벼운 통증을 느끼고 초강력 타이레놀을 사먹었다. 어이없게도 몇 시간 후 그는 사망했다. 그로부터 닷새 동안 시카고에서 그의 동생 내외를 비롯해 여섯 명이 더 타이레놀 캡슐을 복용한 후 사망했다. 시카고 경찰은 누군가 약국에서 타이레놀을 사다가 치명적인 독성 물질인 시안화물을 주입한 후 다시 약국에 반품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미국 진통해열제 시장의 최강자였던 타이레놀의 시장점유율은 7%까지 추락했다.

이 사고가 나자 타이레놀 제조사인 존슨앤존슨의 CEO는 즉각 사과하고 해당 공장에서 만든 제품을 전량 회수하는 한편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해당 제품을 복용하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권고했다. 제조사에 혐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이 회사는 2억4000만 달러를 들여 타이레놀 3100만 병을 수거해 폐기했다. 이 같은 '사전 조치(proactive)’는 존슨앤존슨이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때 컨설팅 회사 등으로부터 브랜드를 포기하라는 권유를 받았던 타이레놀을 소비자들은 여전히 지속적으로 애용했다. 소비자들의 이런 반응은 어쩌면 예견된 것이었다. 당시 <사이칼러지 투데이>가 실시한 서베이에 따르면 무려 응답자의 92%가 타이레놀이 소생할 것이라고 답했다.

존슨앤존슨 CEO “사람들의 신뢰를 잃고 싶지 않다”
1986년 봄 존슨앤존슨은 똑같은 일을 겪는다. 뉴욕에 사는 한 여성이 타이레놀 캡슐을 먹고 갑자기 사망한 것이다. 이번에도 시안화물이 검출됐다. 3년 반 전 악몽이 되풀이 된 셈이다. 그러자 이 회사는 변조를 막을 길이 없는 캡슐형 타이레놀을 생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알약 형태의 타이레놀만 생산키로 한 이 결정으로 1억5000만 달러의 추가 비용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당시 존슨앤존슨 CEO는 이렇게 입장을 밝혔다. "사람들은 우리 회사가 믿을 만하고 책임감 있는 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런 신뢰를 잃고 싶지 않습니다."

타이레놀의 시장점유율은 전성기 기록에 육박하는 32%까지 회복됐다. 존슨앤존슨 측이 여론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시장조사 등을 통해 활발하게 소비자들의 의견을 수렴한 것이 주효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이 회사가 이렇게 대응한 것은 '공중의 안전을 먼저 생각한다'로 시작하는 신조(Our Credo)가 있었기 때문이다.

엔론 스캔들부터 도요타 사태까지, 기업 윤리를 저버린 결과
한편 미국의 7대 기업으로 승승장구하던 에너지 기업 엔론은 기업 비리의 대명사로 낙인 찍힌 채 2001년 파산했다. 한때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히던 이 회사의 명성은 허명으로 판명났다. 경영진은 장부 조작을 일삼았고 도덕적 해이는 극에 달했다. 엔론의 이런 비리에 눈감는 대가로 엄청난 거액을 챙긴 미국 최대의 회계법인 아더 앤더슨은 동반 몰락했다. 엔론 사태는 미국 기업에 경종을 울렸다. 경영진이 아무리 유능하고 혁신적이라고 하더라도 기업 윤리에 둔감하면 문을 닫는다는 교훈을 남겼다.

세계 초일류 기업인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위기를 맞은 것도 처음 문제가 터졌을 때 투명하게 사태를 수습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성에 젖어 덮어버린 결과 적은 비용으로 풀 수 있었던 문제를 키우고 마침내 해결이 난망인 지경까지 악화시켰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도 시스템 미비와 더불어 윤리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금융 회사들은 신용 위험도가 높은 사람에게까지 돈을 많이 빌려줬고 그래서 생긴 리스크마저 금융 파생상품을 만들어 일반 투자자에게 전가했다.

신세계의 윤리경영 도입 효과는…
윤리경영의 역사는 길다. 존슨앤존슨, IBM, GE 등 역사가 오래된 외국의 선진 기업들은 예외 없이 모두 윤리경영을 하고 있다. 100년 된 윤리강령도 있다. 윤리경영을 하는 것은 물론 회사경영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윤리경영은 더 이상 선택과목이 아니다.

윤리경영의 전도사로 통하는 구학서 신세계 회장(사진 우측)은 "윤리경영을 하는 기업과 하지 않는 기업 간엔 신뢰의 격차가 상당히 크다"고 말한다. 일류 기업과 이류 기업의 차이는 신뢰의 격차에서 오는데 이 격차를 벌려 놓는 게 기업의 윤리성이라는 것이다. 윤리경영은 말하자면 신뢰를 얻기 위해 치르는 비용이다. 그는 지난 10년 간 윤리경영을 뿌리내려 신세계를 국내 최대의 유통 업체로 키웠다. 윤리경영을 하기 전 2~3만 원 수준이던 이 회사 주가는 지금 50만 원이 넘는다. 이런 주가 상승의 50% 이상이 윤리경영 덕이라고 그는 말한다.

신세계는 1999년 윤리강령을 제정하면서 '신세계 페이'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협력업체 사람 등과 식사를 할 때 회사 영업비로 자기 밥값을 내도록 한 것이다. '갑'인 신세계 쪽에서 접대를 안 받겠다고 하니 '을' 입장의 협력업체들이 부담스러워했다. 내부 저항도 심했다. 직원들 사이에서 비용을 줄이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빚어졌다. 협력업체 사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져 결국 경쟁사에 협력업체를 빼앗길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런데 막상 시행을 해 보니 실제로 비용이 줄어들었다. 접대비•회의비 등의 명목으로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쓴 비용이 빠졌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남은 돈을 신세계는 전 직원에게 신세계 페이 장려금 명목으로 똑같이 지급했다. 이 제도가 정착되면서 과거 식사 시간이 가까워오면 방문을 꺼리던 협력업체 사람들이 요즘은 식사 시간에 아랑곳없이 미팅 약속을 잡는다.

1석5조 윤리경영, 단계별로 접근하자
윤리경영을 하면 기업 이미지가 좋아진다. 그 결과 신뢰라는 무형의 자산이 축적될뿐더러 회사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진다. 인력의 질도 높아진다. 윤리경영에 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수혈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윤리의식이 높은 사람들이 회사에 들어오면 전체 직원들의 윤리적인 마인드도 높아진다.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윤리경영을 하면 노사분쟁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윤리경영을 하면 원가경쟁력이 강화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윤리경영엔 단계가 있다. 중요하고 실행하기 쉬운 것부터 실천에 옮겨야 한다. 첫 단계가 법을 지키는 준법경영이다. 좁은 뜻의 윤리경영으로 투명경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정한 인사관리, 이익을 내는 등 기업으로서 경제적 책임을 다하는 것도 이 단계에 속한다. 기업은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영을 해야 한다. 특히 공정한 인사는 윤리경영의 베이스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단계가 상생경영이다. 종업원, 협력업체, 고객, 주주 등 이해관계자와의 관계에서 윈윈을 추구하는 것이다. 기업 활동을 통해 회사가 얻은 부가가치 즉 이익을 배분할 때 윤리적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회사가 낸 이익을 재생산을 위한 유보이익, 주주에 대한 배당, 구성원 보너스 등으로 나눌 때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도록 해야 한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단계가 사회공헌이다. 사회, 국가, 인류 나아가 지구의 환경 등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집단 내지 대상과의 관계에서도 윤리를 지키는 것이다. 탄소 배출 같은 문제에서 보듯이 기업은 개인보다 환경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투명경영과 대비시켜 넓은 뜻의 윤리경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투명경영, 상생경영, 사회공헌 경영은 각각 대 구성원 관계, 대 이해관계자 관계, 대 비이해관계자 관계와 대응한다.

투명경영으로 시작해 단계적으로 윤리경영을 확장해 가는 모습은 세 개의 동심원을 그려나가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호수에 파문이 일듯이 투명경영 다음엔 상생경영, 상생경영을 하고 나서는 사회공헌 경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앞의 단계를 철저히 하고 나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지만 그렇다고 앞선 단계를 완성하기 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어느 정도 진척되고 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인접한 원끼리 서로 오버랩이 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윤리경영만큼은 톱다운 방식으로
포브스코리아가 2008년 CEO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서베이에서 응답자들은 89%가 윤리경영이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그런 데도 윤리경영이 확산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윤리경영은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톱의 의지가 중요하다. 윤리경영은 오너와 CEO에게 과연 의지가 있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다. 위에서 스스로 실천하지 않으면서 아래에 윤리경영을 하자고 할 수는 없다. 상층부가 윤리적으로 흠결이 없어야 구성원이 비윤리적인 행위를 했을 때 책임을 제대로 물을 수 있다. 경영진에게 문제가 있으면 윤리경영을 요구할 수 없고, 설사 요구하더라도 구성원들이 납득을 못한다. 단적으로 비자금을 만들면 거래처에 떳떳할 수 없을뿐더러 내부의 실무자에게도 약점을 잡히게 마련이다.

구학서 회장은 윤리경영을 하려면 경영진이 앞장서서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통업체는 협력사가 제공하는 샘플을 투명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윤리강령에 샘플은 택배로 돌려보내고 개인이 못 갖게 돼 있죠.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납품을 노리는 업체가 샘플 명목으로 담당자에게 고가의 물건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직원들에게 샘플 받지 말라고 하고서 대표이사실에서 받으면 되겠습니까? 윤리경영에서 솔선수범은 필수입니다."

윤리경영을 하면 CEO도 편하다. 윤리경영이 제도화되면 인사청탁을 들어주려야 들어줄 수가 없다. 이채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은 외부에서 인사청탁을 하는 전화가 걸려오면 "나는 본부장 인사권밖에 없다"고 말한다. 사장으로 부임한 후 그는 리더로 하여금 자신이 쓸 사람을 직접 기용토록 하는 잡 포스팅 제도로 인사 시스템을 바꿨다. 이 제도에 따라 그는 자신에게 직접 보고하는 본부장 인사만 한다. 본부장은 처장을, 처장은 팀장을, 팀장은 같이 일할 팀원을 임명한다.

엔론, 월드콤 등 미국 유수의 기업들이 회계 부정을 저지르자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스톡옵션은 CEO의 탐욕"이라고 비판했다. 성과에 대한 보상을 주가에 연동시키다 보니 CEO들이 분식결산, 주가 조작 등에의 유혹에 빠진 것도 사실이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라고 할까? 이런 CEO들이 소비자 눈에 곱게 비칠 리 없다.

빠른 것이 강한 시대가 가고, 윤리적인 것이 강한 시대를 맞고 있다. 바이어스 마켓, 레드 오션에서는 소비자가 강자일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의 윤리적인 잣대는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다. 바야흐로 강한 윤리가 강한 기업을 만드는 시대를 목도하고 있다. 이 시대엔 윤리경영을 내장해 경쟁력을 강화해야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