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외환위기 시절 소위 ‘1000냥숍’이 여기저기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지금, 그 많던 1000냥 백화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살아남은 업체는 바로 국내 1000냥 백화점의 시초, 다이소아성산업이다. 일본 100엔숍의 대명사인 다이소와 국내업체 아성산업의 합작기업이다(이하 다이소). 다른 1000원숍이 모두 망할 때 다이소는 어떻게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을까?

다이소의 CEO인 박정부 회장은 원래 유통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공대를 나와 형광등 제조업체에서 근무했다. 88년 그는 한일맨파워라는 회사를 차려 일본 기업 연수를 전문으로 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우연한 기회에 100엔숍의 선두 주자인 일본 다이소에 제품을 공급하게 되면서 인생의 제2막을 연다.

일본 다이소의 야노 회장은 매우 괴팍한 사람이었다. 100엔짜리지만 품질이 뒤떨어지는 제품을 가져오면 눈앞에서 가차 없이 집어 던지곤 했다. 많은 업체들이 납품을 시도했지만 높은 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거래가 끊겼다. 하지만 박 회장은 달랐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값싼 제품을 찾기 위해 중국으로만 향할 때, 박 회장은 전 세계에서 해당 제품을 가장 잘 만드는 국가를 찾아 20여개가 넘는 나라를 돌아다녔다. 박 회장의 이런 노력은 점차 빛을 발해 야노 회장의 신임을 얻게 됐다. 급기야 한일맨파워는 일본 다이소 해외 물량의 3분의 1을 공급할 정도로 성장하게 됐다.

그로부터 5년 후인 92년, 박정부 회장은 국내로 눈을 돌렸다. 국내총생산(GDP)이 1만달러를 눈앞에 두자 이제 우리나라도 균일가 매장이 자리 잡을 만한 경제 규모가 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성산업이라는 회사를 세우고 97년 5월 천호동에 첫 매장을 열었다.

비밀 ① 어떻게 품질 유지하며 값 낮출까?

다이소 매장은 밝고, 대형마트에 온 듯한 느낌을 제공해 소비자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이렇게 세상에 등장한 다이소는 1000원 남짓한 제품들을 팔아 지난해 매출 3300억원을 기록했다. 매장은 지난해 1월 500호점을 돌파해 현재 540여점이 운영되고 있다. 그동안 다이소의 실적을 보면 정말 놀랍다. 하지만 우리를 진짜 놀라게 하는 것은 숫자 너머에 있다.

먼저 가장 주목할 부분은 가격을 1000원에 맞추는 비결이다. 유리컵 제조업체인 A사가 개당 1100원짜리 제품의 납품을 의뢰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다이소 제품의 판매가는 이미 1000원으로 정해져 있다.

다이소는 A사에 개당 제품 원가를 500원으로 맞춰오라고 주문한다. 다이소의 요구를 들은 A사는 펄쩍 뛴다. 제품 원가가 1000원이 넘는데 무슨 수로 500원짜리 제품을 만드느냐며 화를 낸다. 방법을 찾기 위해 다이소는 직접 제조공장으로 찾아간다. “당신네 공장은 현재 가동률이 80% 정도인 것 같군요. 어차피 비싼 돈 주고 산 설비인 만큼 가동률은 높을수록 좋을 거요. 남는 20%로 우리 제품을 만드시오. 대신 우리 제품 원가에는 직접비(재료비, 노동자 인건비 등 제품 생산에 직접적으로 들어가는 비용)만 계산하는 거요.”

하지만 여전히 500원으로 맞추기엔 무리가 있다. 이때 다이소의 두 번째 제안. “그 대신 남들이 1만개 주문할 때 우리는 10만개를 주문하겠소. 그것도 몽땅 현금으로. 앞으로 차차 알게 되겠지만, 우리는 결코 어음거래를 하지 않소.”

A사와 같은 중소 제조업체에 이런 거래는 흔치 않다. 하지만 여전히 500원이란 가격은 팔수록 밑진다. 이때 다이소는 세 번째 제안을 한다. 크리스털 컵 자체에 대해서다.

“포장을 없애주세요. 중요한 건 제품 그 자체입니다. 또 여기표면에 무늬가 많이 들어가 있는데, 과도하게 들어간 장식은 제거해주세요. 그리고 같은 유리라도 좀 더 단단하면서 싼 재료가 있다면 그걸로 바꿔주세요. 크리스털 잔을 사는 소비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예쁘면서도 잘 깨지지 않는 제품이니까.”

A사 사장은 결국 흔쾌히 제안을 수락한다. 박 회장이 가르쳐준 대로라면 제품 단가를 450원까지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다이소는 대부분의 제품 원가를 원하는 가격에 맞출 수 있다.

이뿐 아니다. 다이소는 소비자들에게 싼 게 비지떡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서 품질을 높이려는 노력에 사활을 건다. 그래서 질 좋은 제품을 찾아 전 세계를 누빈다. 다이소 제품은 ‘메이드 인 차이나’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다이소가 취급하는 수입품 중에 중국산은 50%가 채 되지 않는다. 나머지 제품들은 전 세계 28개국에 퍼져 있는 2000여개 공장에서 들여온다. ‘해당 제품을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나라’를 찾기 때문이다. 대나무 제품은 필리핀에서, 스테인리스는 인도에서, 접시는 브라질에서 공급받는 식이다.

또 주목할 것은 ‘다이소 내부의 제품 검증 프로세스’다. 다이소에 처음 들여오는 제품은 총 4단계의 검증 프로세스를 거친다. 제품은 해당 카테고리를 담당하는 직원, 담당 팀장, 17년 경력의 제품 총괄 상무에 이어 마지막으로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박 회장을 거친다.

비밀 ② 매장에 가면 기분이 좋아진다?

1000원 균일가 매장이 마트나 편의점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통채널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모든 면에서’ 소비자의 기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줘야 한다. 다이소 매장에 가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유는 뭘까? 소비자들에게 쇼핑의 즐거움을 주겠다는 다이소의 철학이 매장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기존 1000냥 백화점은 좁은 공간에 제품을 그냥 쌓아놓아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쉽게 찾을 수 없다.

반면, 다이소는 제품을 115개의 세부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카테고리별로 판매대를 따로 구성하는 등 소비자의 동선을 고려했다. 비록 1000원짜리 제품을 파는 곳이지만 소비자들은 마치 대형마트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또 다이소 매장은 기존 1000냥 백화점 매장에 비해 훨씬 밝다. 제품이 대체로 크기가 작고 아기자기하기 때문에 매장이 어두우면 쇼핑하는 사람들의 눈이 쉽게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에게 즐거운 쇼핑 경험을 주려고 노력하는 다이소의 세심한 배려를 찾을 수 있다.

비밀 ③ ‘내 가게’ 돌보듯 운영하는 직원들?

다이소 매장의 직원들 또한 특별하다. 그들은 업무를 정말 ‘내 일’로 여긴다. 행여나 손님이 찾는 제품이 없는 경우,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대체품을 마련해준다. 요란한 CS(고객 만족)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모든 직원이 매장을 찾은 손님들을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로 맞이한다. 매일 아침 머리를 맞대고 이번에는 무슨 기획전으로 손님들께 재미를 선사할까 고민한다. 전체 800여명의 다이소 직원 중 본사에서 직접 관리하는 직원은 200명도 채 되지 않지만 매장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모두 주인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비법은 무엇일까? 답은 기업 가치에 맞는 인재상을 명확히 정의했다는 것이다. 다이소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갖춰야 할 요건을 생각해 보자. 명문대 졸업? 높은 토익점수? 다양한 경험? 모두 아니다. 2만종이 넘는 다이소 제품을 제대로 관리하고 뛰어난 품질을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데에는 기업이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인재 요건은 중요치 않았다. 다이소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다양한 제품을 기능과 품질에 따라 깔끔하게 정리하고, 이를 잘 배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바로 ‘주부’의 캐릭터가 필요한 것. 실제로 다이소 점장의 92%가 여성이며, 이 중에서는 기혼자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다이소의 인사 시스템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하는 부분은 바로 인재육성책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이소는 임시직으로 채용했던 직원이라 할지라도 매장 운영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경우 얼마든지 정규직으로 전환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들에게 점장 자리까지도 제안하고 있다. 실제로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로 일을 시작했던 20대 초반 모 파트장의 경우, 다이소에 들어온 지 2년 만에 본사에서 10개 매장을 관리하는 자리에까지 올라섰다.

다이소의 사례는 단순히 성공한 기업의 전략으로 보기에는 아깝다. 초저가 상품을 만들어내는 노하우와 품질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 다양한 제품과 살아 움직이는 매장, 주인의식이 넘치는 직원들. 이 모든 것을 통해 소비자에게 최상의 쇼핑 경험을 제공하는 다이소가 만들어졌다. 다이소는 ‘진정한 열정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전해진다’는 옛말을 여실히 증명하는 사례다.

[조미나 IGM 상무 mnjo@igm.or.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58호(10.06.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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