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로 어려워진 살림살이가 펴질 수 있는 정책과 미래의 희망을 주는 일을 하는 것이 지도자다. 수많은 인재 중에서 뽑힌 국회의원 299명은 모두가 지도자로 치부될 만하다. 현재 국회의 모습은 과연 그러한가. 며칠 전 초·중·고교 및 대학생 4500명을 대상으로 한 신뢰도 조사 결과를 보면, 국회의원은 5점 만점에 최하위인 2.23점이었다. 국회 불신이 젊은 층에서조차 가장 크게 나타난 것이다.
입법은 국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입법이 요구된다는 것은 해당 사안과 관련해 국민의 의사가 복수로 갈라져 있음을 의미한다. 다양한 의사를 가진 집단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국회라는 큰 용광로 속에 넣어 함께 녹여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노동법 개정 논의 과정은 극히 우려스럽다. 지난 4일 노사정 합의로 결정된 노동조합법 개정 방향을 두고 국회는 거의 기능 마비상태에 빠져 있다. 그간 노사관계의 발전과 더불어 국제인권규약의 가입으로 공무원과 교원의 노조설립 및 활동이 가능해졌다. 유엔인권위원회로부터 문제조항이라고 지적받았던 제3자 개입금지 등도 삭제되었다.
오직 하나 국제기준에 충족되지 않는 규제로 남아 있던 것은 근로자들의 조합선택권을 제한하고 있는 복수노조 금지조항이다. 노동조합 간의 경쟁시스템을 의미하는 복수노조 문제는 우리나라처럼 기업별 중심의 노조 수가 많은 국가에서는 노조 간 갈등이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복수노조 허용은 차츰 안정화되어 가고 있는 노사관계의 전체 구도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판단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1997년 복수노조 허용 원칙에는 합의했지만 기업 단위에서는 13년간 유예했던 것이다.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복수노조 허용 등에 관해 노사정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국회에서는 새로운 논의가 돌출되고 있다. 노사정 합의의 의미가 필요에 따라 달라진다면, 국회의 갈등조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인가. 국회가 일방의 의견을 선(善)으로 여기고 다른 견해는 선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의 연속선상에 머문다면 국회의 존재 의미는 평가절하될 수밖에 없다. 국회는 대립되는 여러 의사를 최대한 용해해 국가 전체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입법할 때 존재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연말까지 국회가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면 복수노조는 내년에 곧바로 시행된다. 복수노조 문제와 전임자 임금지급에 관한 일체의 법적 기준이 순식간에 바뀌는 것이다. 95년부터 끌어 온 법학전문대학원 관련 법률이 온갖 파행으로 논의다운 논의도 해보지 못하다 시간에 쫓겨 2007년 7월 3일 임시국회 폐회 몇 분 전 상정돼 무더기로 통과되던 장면이 떠오른다. 미국 하원이 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놓고 최선을 다한 후 질서 있게 투표하고 이를 수용하던 모습과 극단적인 대조를 이룬다. 작명가들의 주장처럼 이름에 운명이 내포되어 있다면, 권위적인 ‘국회’라는 이름을 버리고 대의적인 ‘의회’로 이름이라도 바꾸어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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